Why Facebook Needs Sheryl Sand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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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Facebook Needs Sheryl Sandberg

Mark Zuckerberg’s second-in-command provides “adult supervision” at the company, trying to keep growth at an optimum level

By Brad Stone

4월 30일 화요일 오후, 페이스북 관리자 30명이 한데 모여 유명하신 창립자의 회사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자라나고 있는 페이스북의 크기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였다. 이 회의의 주관자는 페이스북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였으며, 그녀는 새로운 직원 수 천 명을 동원하기보다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하여 사용자와 광고주, 파트너 웹사이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이윽고 관리자들이 한 명 한 명씩 일어나서 생산성을 높이는 툴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발표했다. 소셜 확인(social verification)이라 불린 한 서비스는 페이스북 회원의 계정이 막혔을 경우, 친구들의 확인을 통해 계정 확인을 해 주는 기능이었다. 또한 지도 상에 위치를 표시하여 계속하기를 정말 바라는지 물어보는 등, 가짜 프로필 계정을 함부로 만들지 못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시스템 제안도 나왔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샌드버그는 주의깊게 발표를 들은 다음, 긍정적인 피드백과 동지에를 한데 모아 반응했다. 한 해외지사 관리자가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인도 서부의 대도시) 사무소의 효율성이 새로워졌다고 말하자, 샌드버그는 “대단한 업적”이라 말했다. “이 일을 어느 분이 하시건 간에 여러분은 자부심을 느낄 겁니다. 우리들은 구글에서 4년 걸렸거든요.” 중복된 프로필을 제거해주는 자동화 툴의 성공사례를 듣자, 그녀는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샌드버그는 이 회의에서 논의한 새로운 절차를 활용, 페이스북이 인재들을 계속 적정한 비율로 채용할 수 있기 바라고 있다. 급성장 시기의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직원들을 두 세 배 늘렸지만(가령 구글 직원 수는 26,000명이 넘는다), 결국 혁신을 죽이는 관료주의만 낳았다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직원은 현재 2,500명 수준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은 본사 자리로, 전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자리했던 멘로파크(Menlo Park)의 한 구역을 3,600명 수용이 가능해지도록 리노베이션하고 있는 중이다. 샌드버그는 “작게 남아 있기 위해서, 작은 상태로 머무르는 편이 최고라고 봅니다.”라 말했다.

회의가 끝나면서 한 제품 관리자가 슬라이드를 보여줬는데, 이 슬라이드때문에 샌드버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슬라이드는 페이스북의 광고수입과 광고량을 보여줬는데, 모두 상승세였다. 또한 이 슬라이드는 기타 지원에 들어간 노동시간이 별로 늘어나지 않았음도 보여줬다. 샌드버그가 말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벽에 붙여 놓아야겠어요. 여러분, 차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기업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크게 되느냐가 바로 이것이에요.”

실리콘밸리가 기업들을 급상승시킨 이래, 모험가와 투자자들은 언제나 “어른의 관리(adult supervision)”에 대해 거론해왔다. 경륜 있는 중역이 신생기업의 미숙한 창립자들을 지도하여 급성장의 폐해를 피하고 위대한 아이디어나 기술을 수완 좋은 사업으로 탈바꿈시켜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요새 젊은 창립자들은 자기 회사를 계속 소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2인자 격의 리더가 새로이 뜨고 있다. 천재 창립자의 명성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셰릴 샌드버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성장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벌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셰릴 샌드버그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 샌드버그가 있는 페이스북보다 샌드버그를 더 원하는 곳은 없다. 이제 41세인 샌드버그는 3년 전 구글을 떠나 페이스북으로 이직했다. 그녀는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회사를 키우는데 도움을 줬다. 또한 세계 최대급 브랜드를 끌어 모아 26세인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5월 14일 부로 27세이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다져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드버그 앞에는 제일 힘든 난관이 놓여 있다. 그녀가 처음 페이스북 들어갈 때의 페이스북 회원 수는 6,600만 명이었지만 이제는 6억 4천만 명이 넘는다. 즉, 페이스북은 현재 조직적인 혼란감을 줄 정도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페이스북의 “규모성”을 늘려서 비지니스 엔진을 더 일으키고 소셜네트워크에 대해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할 임무가 놓였다. 올해나 2012년, 주식상장을 하게 되면 페이스북의 가치가 1천억 달러가 넘어가리라 관측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은 갑자기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인터넷 회사가 된다. 한편 주식상장이 이뤄질 경우 감사의 수준도 올라간다. 이미 페이스북은 그 수준에 맞추는 작업을 진행중에 있으며, 샌드버그는 이러한 임무를 두려워하지 않노라 말하지만 페이스북이 기대치만 충족시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마크 저커버그보다 더 기대를 많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장 가치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전세계가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페이스북과 샌드버그에게는 힘든 일이 산적해 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창립자를 괴롭혀 온 온갖 종류의 장애물이 많았다. 수석 급의 숙련 기술자들이 다른 시장에서 주식 현금화를 위해 꾸준히 떠나고 있으며, 하버드 대학교 때부터 뿌리가 깊은 법적 소송도 또 다시 생기고 있는 중이다. 중국으로 시장을 확장시켜야 할지도 고민이고,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다. 샌드버그가 얼핏 봐도 페이스북은 무엇이 공개용이고 무엇이 개인용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고객들을 분노하게 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고된 업무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가 그녀에게 반대하는 이가 없다. 친구와 동료들 모두 그녀가 소프트 파워로 알려진 설득의 힘을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칭찬한다. 초기 페이스북의 간부였다가 이제 벤처 자본가로 변모한 매트 콜러(Matt Cohler)의 말이다. “샌드버그는 제가 일생동안 만나본 경영진 중에 최고입니다.” 페이스북의 이사로 있는 짐 브레이어(Jim Breyer) 또한 “뛰어난 지능과 열정적이고 전염성을 가진 영혼을 합쳐 놓은 사람은 그녀 말고 못 봤어요.”라고 말했다.

샌드버그의 소프트 파워는 실리콘 밸리의 다른 유명인사들의 마초주의와는 사뭇 대비를 보인다. 가령 스티브 잡스와 래리 엘리슨은 따스하다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전 인텔 CEO인 앤디 그로브는 한 때 하도 직원들을 겁줘서 어느 직원은 성과검토를 하는 동안 실신하기도 했었다. 샌드버그의 말이다. “저도 업무중에 소리를 지릅니다. 마크에게도 소리를 지르죠. 마크는 훌륭해요. 소리를 지르고나면, 그가 ‘한 번 껴안을까요? 괜찮아요?’라고 묻거든요.”

저커버그의 말이다. “샌드버그가 없으면 우리는 쓸모 없었을 겁니다.”

2008년 초, 아직 샌드버그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 당시 저커버그는 굳이 사람들끼리 이해하지 않아도 인간관계를 맺어주는 서비스를 개발한 오만한 컴퓨터광으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페이스북 회원 수도 늘기는 했지만 속도가 점차 느려져 갔고, 간부진 또한 격렬히 서로 싸웠으며 Beacon이라 불리는 광고 서비스의 반응도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Beacon은 친구들에게 허가 없이 온라인 구매품을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사실 유지 가능하고 규모성 있는 사업모델이 없다는 점이 페이스북 최대의 걱정거리였다. 페이스북은 파워 검색 관련,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맺어 페이스북에 배너 광고를 넣고, 온라인 광고와 함께 가상 선물을 구매/교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실험은 실패했다. 다른 기술 순수주의자들처럼 저커버그는 광고판매라는 비열한 방식의 사업을 깔보고 있었다. 저커버그의 말이다. “광고에 너무 관심을 두지 말자고 할 정도였죠. 처음에는 그랬어요. 광고는 사용자 제품을 최고로 만들자하고 관계가 없었으니까요.”

새로이 COO를 모신 후, 저커버그는 한 달짜리 세계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샌드버그는 새로운 광고 사업을 다지기 시작했고, 팔로알토 사무실에서 근무 후 회의를 소집하곤 했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칠판에다가는 잠재적인 수입의 기회를 써 놓았다. 그녀에 따르면 가능성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뉘었다. 사용자들이 돈을 내게 하느냐, 아니면 광고주들이 돈을 내게 하느냐였다. 직원들은 광고주가 내게 하는 데에 빠르게 동의했다. 그녀의 말이다. “우리 사업 전체이자 우리 수입의 전부잖아요.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초창기의 외부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콜러와 CTO(수석 기술중역)을 맡았던 아담 단젤로(Adam D’Angelo)와 같은 초창기 간부들이 회사를 떠났고, 단젤로의 경우는 질문답변 웹사이트인 Quora를 만들었다. 기술업계 가쉽 블로그인 Valleywag은 샌드버그 어깨에 총을 놓은 사진을 합성하고,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을 거칠게 대하리라는 암시를 줬다. 친구들에 따르면 샌드버그는 이 합성사진에 대해 분노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총을 휘두르리라 생각할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결국 이 저격은 중단됐다. 이유가 있다. 샌드버그와 동료들이 고안한 광고모델이 사람들 예상 외로 잘 돌아갔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오른쪽 귀퉁이에 걸터 있는 “소셜 광고”는 보통, 회원의 친구들이 특정 광고나 광고주를 “좋아하”거나 코멘트했을 때 나타난다. 데이터 업체인 Webtrends에 따르면 이 광고를 보고 실제로 클릭하는 이들은 0.5% 정도에 불과하지만 페이스북은 2010년 2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된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2011년 예상 매출액은 두 배이다. 페이스북 간부들은 클릭 횟수에 그리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면서, 광고를 더 잘 기억하고 친구들이 지지하는 광고라면 더 구매를 하게 마련이라 말했다.

광고주들도 페이스북의 논리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comScore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현재 미국 내 인터넷 사용자들이 보는 디스플레이 광고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제일 가까운 경쟁사인 야후보다 임프레션(impression)은 두 배라고 한다.

샌드버그는 광고주들이 페이스북의 소셜 기능을 더 깊게 사용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용자가 휴대폰 페이스북 앱을 사용하여 식당을 하나 예약하거나, 광고주 프로필 페이지에 코멘트라도 남기면, 이 행위는 친구들 뉴스피드에 드러난다. 그런데 이 뉴스피드는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금세 묻힌다. Sponsored Stories라 불리는 새로운 툴을 사용할 경우 광고주들은 돈을 내고, 회원의 행위를 광고로 바꿀 수 있게 된다. 회원의 친구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해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당신이 광고주라면 고객을 공짜 홍보꾼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만큼 좋은 전략이 없다. 페이스북의 브랜드 광고를 도와주는 Buddy Media의 사장, 마이클 라즈로(Michael Lazerow)는 대형 광고주들이 올해 페이스북에 지출하는 광고 금액이 1억 달러를 넘으리라고 예상한다. “지난 해 전혀 지출하지 않았던 광고주들이 올해는 수 백만 달러씩 지출할 겁니다. 수 백만 달러를 이미 지출한 광고주들은 올해 수 억 달러를 지출할 테고요.”

페이스북의 촉수는 이제 Huffington Post에서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수 백만 웹사이트를 아우르고 있다. 독자가 코멘트하는 시스템으로서 “좋아요”와 “보내기” 버튼을 통해 페이스북 친구와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샌드버그의 지도 하에, 페이스북은 “소셜 디자인”이라는 만트라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맞추고 싶어하는 기업을 위한 서비스로서, “좋아요” 버튼이 있는 모든 사이트에 나타날지도 모를 서비스이기도 하다.

샌드버그는 구글에 있을 때 이미 기본적인 각본의 형성을 도운 바 있었다. 페이스북 광고는 구글의 타겟 검색 광고가 검색 결과의 알고리즘을 보완해주듯 소셜 네트워크의 맥락에 들어맞는다. 샌드버그는 심지어 페이스북의 광고그룹을 전세계 유명 브랜드 광고를 맡을 영업조직과 중견 기업 마케터를 맡는 내부 영업팀, 그리고 소기업을 위한 셀프-헬프 툴을 만드는 온라인 영업팀 등, 구글 광고그룹처럼 조직화시키기도 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 올 때 구글 때의 부하들을 많이 데려오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궤적을 볼 때, 샌드버그를 페이스북에게 빼앗긴 것은 상당한 치명타였다. 운영체제의 개척자였던 개리 킬달(Gary Kildall)이 1980년 IBM과의 계약을 마다하고 날아가버린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빌 게이츠는 MS-DOS를 라이센스할 수 있었다. 샌드버그의 친구이자 페이스북에 투자한 투자사, Elevation Partners의 창립자인 로저 맥네미(Roger McNamee)의 말이다. “구글이 잘 한 일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엔지니어링 배경이 없는 인재들이 없다는 점, 그런 인재들을 평가해주지 못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 결과 구글에서는 셰릴과 같은 인재들이 진정한 역량을 펼칠 기회를 못 가지고 있죠. 어떻게든 셰릴을 쫓아낸 쪽은 구글입니다.”

샌드버그는 마이애미의 중산층 동네에서 자라났고, 세 남매 중 장녀다. 그녀의 어머니는 국어를 가르쳤고 아버지는 안과의사였다. 80년대 후반, 그녀가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동료들에 따르면 샌드버그는 이미 지성과 사교성, 정치참여로 유명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Facebook HQ: Sandberg in the user operations department. Facebook plans to move into Sun Microsystems’ old campus later this year
Photograph by Robyn Twomey

하버드에서 샌드버그는 기숙사를 하나의 소셜 기관으로 조직화시키고, 그룹을 만들어서 더 많은 여학생들이 경제학과 행정학을 택하도록 독려했다. 1991년, 경제학과 교수인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는 그녀에게 중간고사에서 최고점을 줬고, 논문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그녀의 논문 주제는 여성에 대한 국내폭력과 사회경제적 지위 간의 연관성이었다. 샌드버그는 논문을 위해 하버드 대학교 과학센터의 컴퓨터에서 너무나 많은 데이터를 돌리다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똑같은 일을 벌이기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샌드버그가 충돌을 일으키자, 센터측은 서머스 교수에게 불만 전화를 걸었고, 서머스는 샌드버그의 졸업 후, 그녀를 자기 팀에 합류시켰다. 서머스가 자리를 맡게 된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의 팀이었다.

서머스에 따르면 샌드버그는 자신을 빠르게 증명해냈다고 한다. 가령 누군가 케렌스키(Александр Ке́ренский)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줬다면 70년 공산주의를 피할 수 있잖았겠는가, 하고 별 의미 없는 질문을 했는데, “샌드버그가 6시간 후에 돌아와서는 그 주제의 적합성에 대해 분석을 하더군요. 그녀는 정말 놀라운 인물입니다.” (샌드버그는 단순히 전화를 걸어서 하버드 대 교수인 리차드 파입스(Richard Pipes)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빈곤 관련 문제와 인도 나환자촌을 여행하는 등 2년동안 세계은행에서 일한 뒤, 샌드버그는 서머스와 함께 재무부에 들어갔고, 서머스가 재무부 장관이 되자 그녀도 팀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녀의 일은 서머스의 지시(집행의무는 없다)를 차관급 10여 명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일을 맡은지 3일 째에 미국 관세청장이자 나중에 뉴욕시 경찰국장이 된 래이 켈리(Ray Kelly)는 샌드버그에게, “래리 서머스의 서른 살짜리 전문 조수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내 일을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야.”라 하면서 전화기를 집어던진 일화가 있다. 그 후, 샌드버그는 전화가 아니라 직접 그들을 방문하면서,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지를 물어봤다. 그녀의 말이다. “한 번 그렇게 해야 관계가 형성되죠.”

어떻게 보면 샌드버그는 여전히 워싱턴 사람답다. 그녀는 끊임 없이 집에서 이벤트와 파티를 챙기고 Washington Post의 총수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e Graham)이 한창일 때 상당한 환대를 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회의 때 노트북을 챙기지 않고 다이어리에다가 적는 편을 선호한다. 정치적인 기술도 상당하다. 부하 직원들에 대해서 칭찬은 공개적으로 하되 질책은 사적으로만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링부 상무인 마이크 슈뢰퍼(Mike Schroepfer)에 따르면 “그녀는 대단히 직설적”이다. “샌드버그는 개인적으로 따로 사람들을 만나서 ‘나나 되니까 말하는데, 이것을 해. 그리고 이것은 더 개선해야 해.’라 말하더군요.”)

그녀는 자신의 사교성을 통해 페이스북 최고의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페이스북에서 제일 바람직한 후보를 데려다가 개인적인 관계를 만드는 식이다.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계영업부 책임자였던 캐롤린 에버슨(Carolyn Everson)은 올해 초, 샌드버그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페이스북 세계영업부 상무로 모시려 하는데 일단 만날 수 있을지의 내용이었다. 그 후로부터 샌드버그는 차에서건, 집에서건, 멕시코에서 휴가중에서건 에버슨에게 전화했다. 뒤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어느날 저녁에는 피곤해서 9시나 9시 반에 잘 거라는 메시지를 남겼더군요. 이 여자가 잠은 자는구나, 싶었죠.”

샌드버그의 구애는 모셔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영업팀 800명 앞에서 연설까지 부탁받은 샌드버그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어야 할지, 아니면 보다 캐쥬얼한 바지와 튜닉을 입어야 할지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샌드버그에게 전화했고, 샌드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절대로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건 없어요. 여자 친구라면 으레 물어볼 질문이에요.” 선택한 옷은 빨간 드레스였다.

샌드버그의 경영술과 개인적인 터치에도 불구하고 구글과 같은 지도자격 기술기업에 들이닥친 문제가 페이스북에도 몰아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다. 지난 해 페이스북은 외부 웹사이트에서 페이스북 회원의 개인 세부사항에 들어맞는 콘텐트를 만들어주는 “instant personalization” 기능을 소개했지만, 페이스북 회원들은 이 기능이 조잡하다 반대했고, 프라이버시 그룹도 당연히 반대했다.

페이스북은 전략적으로 일단 후퇴했다. (으레 그렇게 한다.) 그리고는 사용자가 직접 자기 페이스북 선호사양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고르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통상위원회(FTC)는 프라이버시 단체들의 불만이 접수된 이후 페이스북에게 프라이버시 정책에 대해 질의를 던졌다. 이 질의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몇 주 안에 FTC가 직접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정책 변화가 기만적이고 불공정하다고 결정내릴 것이라고 한다. 회원 가입 동의서를 보면 페이스북은 주기적으로 외부 독립 그룹의 “프라이버시 감사”를 받아야 한다. (최근 구글도 똑같은 조치에 동의했다.) 또한 그들의 명시적인 허락이 없이는 프라이버시 설정을 변경할 수 없어야 한다. 샌드버그와 페이스북의 대외정책 책임자인 엘리엇 슈라지(Elliot Schrage)는 동 조사의 자세한 사항에 대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이 프라이버시에 대해 균형점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이다. “얼마나 공유할지 설정할 수 있도록 통제권을 회원에게 넘겨주면서 어떻게 통제를 할지, 어떻게 간단하게 할지를 돕지 않았다는 정도로 비판한다면 공정한 비판이 되리라고 봅니다.”

페이스북을 따라다니는 소송도 있다. 초창기 파트너와 저커버그를 도왔다면서 어디에 있는지도 안 가르쳐 준 채 지분(수 억 달러 정도 된다)만 요구하는 초창기 재무 담당자들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 우드펠렛(wood pellet) 영업을 했던 전과자 폴 세글리아(Paul Ceglia)가 저커버그를 고소했다. 2003년 고용계약서에 따라 페이스북의 절반을 저커버그가 약속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진짜인지 아닌지는 법원이 가려야 하겠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이메일까지 만들었다.) 샌드버그나 저커버그, 혹은 다른 어떠한 페이스북 간부진도 이 소송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문제도 있다. 페이스북은 검색엔진 업체인 바이두(Baidu)와 같은 중국 인터넷 업체들과 조인트 벤처를 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의 중국 내 검열과 필터링을 통과하기 위한 부서를 만들기 위해서다. 아직 이뤄진 결정은 없다고 하며, 샌드버그는 이 문제가 페이스북의 남녀관계가 “복잡하다”고 한 것처럼 매우 복자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타협이 안 되는 것이 있고, 중국에서만 타협이 되는 것이 또 따로 있어요. 어느 것이 더 클지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이 내부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샌드버그와 저커버그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이집트나 튀니지에서처럼 중국 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반면 구글을 통해 중국에서 값비싼 경험을 얻은 샌드버그는 중국 내 사업을 하기 위해 해야 할 협상 내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동 주제에 대해 갈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밝히지는 않을 테지만, 샌드버그는 저커버그와의 의견 불일치는 흔히 있는 일이며 그래야 더 좋다고 말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CEO의 몫이다. 저커버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며, 아무 것도 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꽤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우리가 해 왔던 일을 볼 때, 좋다고 생각할 때 진입하면 결과가 좋으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일단 어떻게 될지는 따져봐야겠죠.”

페이스북이 중국에 진출하느냐, 혹은 언제 들어가느냐의 문제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인 민감성에 대한 필터링 및 검열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중국 회원이 파룬궁에 대한 페이지를 열면 어떻게 될까? 중국 정부가 페이스북에게 요청하여 민주주의 활동가의 사적 메시지를 열람할 수 있게달라고 요청한다면?

Berkma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의 공동창립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교 교수인 조나단 지트레인(Jonathan Zittrain)에 따르면, 중국이 하나의 광산임에는 틀림 없지만, “홍보와 브랜드 관점에서 볼 때에서 광맥이죠. 중국 정부 스스로가 후회할 짓을 과연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셰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 외에도 챙겨야 할 소셜 네트워크가 또 있다. 이따금씩 실리콘 밸리 여성 인재들(의사나 교사, 기술자 등)은 샌드버그 부부가 사는 캘리포니아 Atherton의 맨션에 모인다. (남편은 신생 웹 기업인 SurveyMonkey의 CEO, 데이브 골드버그(Dave Goldberg)이고, 아이가 둘 있다.) 이 모임은 케이터링 음식 접시를 받아 거실의 의자에 둘러앉아서 연설자의 연설을 듣는 모임이다. 그동안 샌드버그는 지나 데이비스(Geena Davis)나 빌리 쟌 킹(Billie Jean King),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메그 휘트먼(Meg Whitman),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커스틴 질러브랜드(Kirsten Gillibrand)와 같은 연설자들을 초청했다. 제일 최근 연설자였던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은 15년 전 재무부에 있을 때, 그러니까 셰릴 샌드버그도 재무성에 있을 때 샌드버그를 안 사이라 말했다. 그도 그녀를 알아봐서 다행이었다.

샌드버그가 말하는 “Women in Silicon Valley” 이벤트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여성인재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재무부에 있다가 지난해 페이스북에 세계공공정책부 상무로 들어온 만 레빈(Marne Levine)의 말이다. “셰릴과 좋은 친구라 느끼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관계 만들기에 샌드버그가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만하죠.”

지난 해의 한 연설자는 캄보디아의 인권 운동가, 소말리 맘(Somaly Mam)이었다. 자신의 일을 발표하고 어렸을 때 노예였던 개인사를 밝히자, 샌드버그는 일어나서 당장 소말리 맘 재단의 자금형성을 하겠다면서 누가 동참하겠냐고 물어봤다. 모두가 가세했다. 샌드버그는 11월, 캘리포니아 산카를로스(San Carlos)의 힐러(Hiller) 항공박물관에서 펀드 조성 파티를 개최하여 백만 달러를 모았다. 이 재단이 받는 연간 기부금의 1/3이었다.

샌드버그의 그러한 활동이나 원활한 친구 관계를 보다 보면 페이스북 이후에 그녀가 무엇이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12월, 샌드버그는 워싱턴에서 TEDWomen의 연설을 맡았다. (보통 TED 톡(TALK)은 기술기업 스타들이 맡는다.) 그녀는 작게나마 타협할 경우, 여성의 커리어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유튜브에서 이 영상의 조회수가 10만 건을 넘었다. 지난 달, 샌드버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연간 외교회의(Foreign Affairs Conference)에서 리더쉽에 대한 연설을 했다. 그녀는 청중 중의 여자들이(청중 대부분은 남자였다) 자신의 커리어를 지지해줄 파트너를 찾으라고 말하면서 청중을 침묵시켰다. 그리고는 해군사관학교 후보생 재킷을 입고 파트너들을 일으켜 세워서 열렬한 찬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면… 주지사? 상원의원? 혹시 워싱턴으로의 복귀? 완벽하게시리 정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한, 마크 저커버그의 친구로 만족해 한다고 말이다. 남편 또한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에 오래 머무르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18개월 이상은 있을 겁니다. 미래를 꼭 예상해야 한다면, 글쎄요. 특히 여성의 삶과 개도국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욕구를 갖고 있기는 합니다.”

오랜 친구이자 예전 하버드 대학교 교수 중 하나인 랜트 프린쳇(Lant Pritchett)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세상을 움직이리라는 인상을 항상 받았어요.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부인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샌드버그에 대해서 당신이 질투할만한, 그리고 증오할만한 것이 많다. 당신은 그리 될 수가 없거든.’”

With Douglas MacMillan. Stone is a senior writer for Bloomberg Businessweek.

Why Facebook Needs Sheryl Sandberg – Business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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